이상화 시의 특징
Sanghwa Memorial Association
이상화 시의 특징은 통한의 민족의식이 담겨 있다.
작품을 시기별로 나누면 대체로 1922년~1923년은 관능적, 낭만적인 것으로 분류할 수 있고,
1923년~1926년까지는 경향파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고, 그 이후는 저항적인 작품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개벽 58호
'문단측면관'에서 토로하고 있는 이상화의 문학관을 보면 "인생의 삶은 충동의 연속이며, 충동은 곧 생활 그 자체로서 그것을 기록해 가는 것이 시(詩)"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문학인은 삶, 곧 인생을 기록하기 위해 남다른 책임이 있어야 하고, 그 책임은 곧 민족 언어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 시인이란 사상의 비판자이며, 생활의 선구자이기에 시대와 호흡을 같이하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믿었다.
현실의 삶을 떠난 문학인이란 있을 수 없으며, 현실 생활 속에서 호흡을 같이하며 시를 찾는 것이 진정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시인이란 시 한 편을 통해 세상을 낳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상화는 핏기 없는 염세주의자가 아니며 직업적 혁명가는 더욱 아니다.
온갖 문예사조가 탁류처럼 휩쓸던 1920년대 와중에도 조국을 사랑했고, 모국어를 지키며 민족의식을 잃지 않았다.
상화의 문학관이 이러하였기에 일제 치하에서 외세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조국 상실을 비통해 하며 저항시를 발표한 이상화는 민족 저항시인으로서 자리잡을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