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화의 시

도쿄에서
19/04/29 17:51:19 관리자 조회 4388

도쿄에서

                                           -이상화-

 

- 1922년 가을

오늘이 다 되도록 일본(日本)의

서울을 헤매어도

나의 꿈은 문둥이 살기같은

조선(朝鮮)의 땅을 밟고 돈다.

 

예쁜 인형(人形)들이 노는

이 도회(都會)의 호사(豪奢)로운

거리에서

나는 안 잊히는 조선의 하늘이

그리워 애달픈 마음에 노래만

부르노라.

 

「동경(東京)」의 밤이 밝기는

낮이다-그러나 내게 무엇이랴!

나의 기억(記憶)은 자연(自然)이

준 등불 해금강(海金剛)의 달을

새로이 솟친다.

색채(色彩)의 음향(音響)이 생활(生活)의

화려(華麗)로운 아롱사(紗)를 짜는-

예쁜 일본(日本)의 서울에서도 나는

암멸(暗滅)을 서럽게- 달게 꿈꾸노라.

 

거룩한 단순(單純)의 상징체(象徵體)인

흰옷 그 너머 사는 맑은 네맘에

숯불에 손 데인 어린 아기의 쓰라림이

숨은 줄을 뉘라서 아랴!

 

벽옥(碧玉)의 하늘은 오직 네게서만

볼 은총(恩寵)받았던 조선(朝鮮)의 하늘아

눈물도 땅속에 묻고 한숨의 구름만이

흐르는 네 얼굴이 보고 싶다.

 

아 예쁘게 잘 사는 「동경(東京)」의

밝은 웃음 속을 온 데로 헤매나

내 눈은 어둠 속에서 별과 함께

우는 흐린 호롱불을 넋없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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